대본의 감성을 읽는 눈이 대단한 배우
- 꽃보다남자, 윤지련 작가 -

초반의 윤지후는 참 여백이 많은 캐릭터였다. 완벽하게 세팅되어 출발한 준표 캐릭터와 비교하면 지후는 벌거숭이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감독과 작가의 의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갈 길을 잃고 제 자리에서 널만 뛰고 있는 메인 캐릭터들 사이에서 조용히 극의 흐름과 함께 호흡을 잘 맞추어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지후를 마주했을 때 나는 소름을 느꼈다. 지후만이 홀로 자신의 여백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며 꾸준히 걷고 있었다. 그때서야 깨달은 거였다, 입체적으로 성장한 지후가 걸어온 길이 실은 현중이의 해석과 계산으로 빈틈없이 짜인 하나의 그림이었다는 걸.

현중이는 아마도 꽃남 첫 대본을 받는 그 날부터 이 드라마가 24부작의 대장정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루이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삼국 드라마 중 가장 많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았고 그래서 현중이는 그 전의 꽃남 드라마에서 한 번도 다뤄진 적 없는 루이의 ‘처음’에 주목했고 거기서부터 그가 ‘츠쿠시만의 루이’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로 결정한 것 같다. 그런 현중이의 시도는 F4중 최고의 꽃미남, 따뜻하고 나른한 봄 햇살 같은 이미지의 루이를 F4중 제일 어둡고 서늘한 얼굴로 등장시켰다. 안타까운 부분은 루이가 워낙 말이 거의 없는 캐릭터인 탓에 눈빛과 표정, 짧은 몇 마디 하나만으로 지후의 복잡한 속내를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었고 그것을 연기해야 하는 현중이는 연기 경험이 ‘전무’한 신인이라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현중인 피해가지 않았다. 이제껏 그래왔듯 김현중 식의 정면 돌파였다. 좀처럼 사람들과 섞이질 않고 세상을 등 돌린 채 살아온 지후의 자폐 성향을 현중인 그의 어색한 시선처리와 움직임, 딱딱하게 굳은 말투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당연히 어려웠고 시청자들은 그런 루이를 낯설어 했다. 달달한 루이, 다정한 루이를 요구했지만 현중인 초조해하지도 서두르지도 않고 스스로가 계산해놓은 페이스대로 지후를 천천히 그려나갔다.

역대 츠쿠시를 가장 사랑한 루이… 윤지후
- 익명 -

그렇게 조금씩, 느리지만 성장하고 꾸준히 변화하고 있던 지후의 감정선은 결국 2막에서 메인 캐릭터인 준표의 입지를 위협하는 ‘반전’을 일으켰다. 지후가 잔디의 눈물을 닦아주며 ’이젠 내가 너를 도와줄게‘ 라고 말한 그 순간이었다. 잔디의 사랑과 친구 준표를 위해 늘 뒤로 한발자국 물러서있던 지후가 온전히 ’그녀만의 윤지후‘로 그녀 앞에 마주한 순간, 최고의 긴장감이 맴돌았다. 지후가 입맞춰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의 복잡한 감정. 현중이가 조용히 하나 둘씩 쌓아 준 지후 안의 절절한 마음이 시청자를 설득했다. 그 마음의 무게는 우리가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친구의 연인인 그녀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손가락질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김현중은 무척 머리가 좋은 친구다.
뭐든지 한다면 하는 친구였다.
- 그룹에이트, 송병준 대표-

현중인 참 똑똑한 배우다. 자신이 연기해야 할 캐릭터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극 전체의 흐름을 읽는 눈을 가졌고 단순한 대사 전달이 아닌 대본을 쓴 작가의 의도를 바로 캐치하는 머리를 가졌다. 현중이가 크게 칭찬받아야 할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말 바보처럼 ‘노력하는’ 배우라는 점이다. 지후를 앞에 두고서도 현중인 연기 테크닉에 집중하기 전에 지후의 내면에 먼저 귀 기울였다. 지후라면 어떻게 할까, 에서 시작되는 그 고민의 답을 스스로 풀고 또 풀기를 반복했다. 느리지만 깔끔한 말투서부터 허리를 곧추 세워 반듯하게 앉는 자세까지, 이제까지 내가 알아오던 김현중은 점점 사라져가고 정말 살아있는 것 같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기품 있는 도련님 윤지후만이 그 자리에 서있었다. 단순히 연기를 잘 하고자 고민하는 게 아닌 그 인물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탄생시켜 내고자 하는 산고와 맞먹는 창작의 고통을 겪었을 터, 더는 볼 수 없을 만큼 너덜너덜 헤진 그의 대본과 이상할정도로 많이 빠지는 살이, 두 번의 실신이… 이상할 게 아니었다.

김현중, 눈이 딱 루이 같아요. 깊고 강합니다.
-꽃보다남자 원작자, 카미오 요코-

하지만 현중인 알까. 윤지후란 캐릭터를 판타지의 정점으로 이끌어 올린 것은 그 무엇도 아닌 김현중 그 자신이라는 걸. 현중이와 지후가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던 순간이 물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지후가 현중이었고 현중이가 곧 지후였다. 성장하고 변화한 지후는 현실의 김현중과 무척 많이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걸, 그는 알까. 서늘함과 온화함이, 슬픔과 따스함이 묘하게 어우러진 그의 분위기가 곧 지후의 분위기였다. 차분하고 고요하게 가라앉아 어딘가 슬퍼보이다가도 빙긋, 미소 짓는 순간 소년처럼 예뻤던 지후의 얼굴도 내가 늘 봐왔던 현중이의 얼굴이었다. 묘하게 보호본능을 자극하여 꼭 안아주고 싶게끔 와 닿다가도 어느 순간 다 큰 남자가 돼서 너른 등에 폭 기대보고 싶게 만들었던 지후 ‘선배’의 모든 게 내가 아는 현중이의 모습이었다. 현중이는 지후의 여성스러운 말투나 감성이 자신과 다르다고는 하나 실은 그가 무척 다정하고 세심한 남자라는 거, 현중이 너만 모르고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사내냄새를 폴폴 풍기는 김현중 덕에 지후는 넘치는 느끼 대사의 홍수에서도 ‘담백하다!’ 는 평을 졸졸 달고 다녔다…… 뭣보다 현중인 지후의 그 여성스러운 감성을 ‘김현중 화’ 하여 부드러움과 강함이 묘하게 섞인 지후만의 감성을 낳기까지 했지) 결국 현중이였기에 가능했던 지후선배였다. 결국 현중인 자기도 몰랐던 제 안의 윤지후를 그 깊은 어딘가에서 TM스로 찾아내 꺼내놓은 거였다. 이는 지후를 통해 현중이를 알게 된 시청자들이 지후 캐릭터와 현중이 실제 캐릭터 사이의 갭이 결코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현중이에게 적응하고 그런 그에게서 지후의 흔적을 여전히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good bye… 윤지후
- SS501, 김현중-

꽃남과 함께 했던 지난 3개월은 다른 듯 하지만 다르지 않은, 알면 알수록 더더욱 현실감 없었던 두 사람과의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동화 속 왕자님이 원작의 루이였다면 현중이가실사화 시킨 지후는 그 동화 속 공주님도 꿈꾸는 이상형이었다. 그리고 그런 지후를 통해 알게 된 현중인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꿈’을 위해 살아가는 아이였다. 흔들림 없이 가장 ‘김현중’다운 방법으로 오로지 ‘성실’과 ‘노력’만으로 정직하게 삶을 마주하는 그의 모습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틱했다. 지후도 현중이도, 모두 꿈만 같았다. 마지막까지 잔디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지후가 좋았고 그 사이에 훌쩍 자라, 지후와 똑 닮은 눈을 하고 있는 현중이가 좋았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그 둘이 옆에 있다면 정말 그들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와 준 그 둘이 기특해서…… 부끄럽지 않게 해준다는, 제가 다 지켜주겠다는 그 약속을 또 멋지게 지켜준 그 둘이 너무 고마워서.

(Editor : 미쓰윤)